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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就是一场营销】丨讲演稿(全文)

2023-07-25 22:56 作者:金弼kim  | 我要投稿

인생은 마케팅이다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아시아태평양마케팅포럼 회장丨세바시1567회

안녕하세요. 모티베이터 조서환입니다.

먼저 오늘 오신 관객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20개의 치아는 80살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2080 치약, 들어보신 분?

오, 엄청 많네요.

혹시 이런 광고카피도 들어보셨나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KT의 전신 KTF의 '쇼를 하라, show' 이것도 들어보셨나요?

(관객들) 네

저는 평생 마케팅을 해왔는데요.

마케팅은 약점보다 강점을 돋보이게 하는 게 아주 중요하더군요.

우리 인생도 마케팅과 똑같습니다.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2080 치약을 마케팅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경쟁사의 도움이 엄청 컸습니다.

완전한 성숙 시장이었던 치약시장에 대기업 경쟁사들이 광고를 어떻게 했냐면요

'치주염, 치은염, 잇몸질환, 미백효과에 00치약'

또 다른 경쟁사는 더했어요.

'치주염, 치은염, 잇몸질환, 미백효과, 충치예방, 구취제거까지

무슨무슨 치약'

이거 소비자가 기억할까요?

이들은 모두 만병통치약처럼 광고를 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역지사지 해보면요 전혀 기억 안납니다.

무슨 광고인지조차도 몰라요. 레드오션 속에서도 기회가 있다고 한 전략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가장 늦게 나온 2080 치약은 대성공해서 1년만에 레드오션 속에서 1등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박수)

또 모든 화장품 회사들이 뭐라고 광고했어요?

화장을 바르는 걸 광고했어요.

근데 저는 반대로 지우는 걸 광고했죠.

우리의 강점인 화장품은 모공 깊숙이 클렌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바로 1등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떠벅떠벅 걸어와서 이렇게 서있으니까 멀쩡해보이죠?

근데 오른손이 없답니다.

어 거기? (있잖아요) 의수입니다.

놀랬죠? 저는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줄기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를 몇명 낳았냐면요. 무려 10명을 낳았습니다.

그 동네는 다산하는 지역이었었는지 7-8명 보통 낳았어요.

농촌에서 가난해가지고 저마다 대학을 보낼 수가 없잖습니까?

부모님을 어려서부터 저를 장군감이라고 군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저도 꿈이 장군이 되는 거였죠.

근데 일찌감치 23살 육군 소위때 꿈이 무너져버렸어요.

부대 내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가 났는데요. 소대장인 제가 수류탄을 최대로 멀리 던지는 순간 머리 위에서 수류탄이 폭발해버렸어요.

끔찍했습니다. 그 때 만약 수류탄을 1초만 늦게 올렸으면 제 몸은 공중분해 됐을 겁니다.

머리 위에 쓰고있던 철모가 1차로 맞고, 2차로 그 밑에 있는 화이바가 맞고 3차로 머리뼈가 막아가지고 살아남은 것이지요.

정말 기적이죠. 머리에서만 파편을 24개 꺼냈는데요.

온몸은 다 벌집이 됐고요. 참으로 다행히 얼굴에는 보시다시피 파편이 한 개도 들어가있지 않습니다.

파편 맞아서 그런지 제가 얼굴에 주름살이 안생겨요.

(관객들 웃음)

그리고 머리도 새지 않아요. 이거 염색한 거 아닙니다.

저는 파편이 이렇게 효과적인지 몰랐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보면 정말 직업도 잃었죠.

꿈도 잃었죠. 희망도 잃었죠. 오른손잡이가 오른손도 없죠.

인생에 답이 없었습니다.

'큰일 났다. 어떻게 먹고 살지?'

정말 손을 잃고 나서 엄청난 좌절과 실의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살아있는 게 기적이긴 한데, 뭘 먹고 살아야하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때 류탄 폭발 사고와 함께 차라리 죽는 게 나았네'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근데 위기일발 직전에 저를 살려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일어나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문제는 앞으로 뭘하며 살지, 어떻게 먹고 살지

집은 가난하고 비빌 언덕조차 없는데

그 때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그 때 제가 끔찍히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근데 여자친구가 보고싶은 겁니다. 근데 연락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을 붕대로 둘둘둘 감아놓은 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더 이상 여자친구를 못만난다고 생각하니까 '아우' 이제는 파편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 그런데 만날 수가 없으니 고민고민 하다가 드디어 연락을 했습니다.

물론 손없다 소리 안했고요.

그냥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보고 헤어지자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무서운거죠.

정말 힘들게 연락을 해서 여자친구가 통합병원을 왔습니다.

그 때 손잃은 저의 모습을 보고요. '헉' 깜짝 놀라서 우두커니 있었어요.

저는 가만히 그렇게 보고 싶어했지만 서있고, 장교 병실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입원해있던 장교들은 둘이 얘기하라고 슬슬슬 '나가자 나가자' 하고 나갔어요.

한참을 지나서 저의 몸상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적응했다 라고 생각할 때

주저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힘든 질문을 하나 합니다.

"아직도 날 사랑해?" 라고 이렇게 물어봤어요.

이게 확인돼야 살 것 같았어요.

그랬더니 그 때 (여자친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고개를 두 번 끄덕끄덕 하는 겁니다.

그 때 저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누가 그랬죠.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그 말이 맞는 거 같았어요. 그 때 각오를 합니다.

'그래 너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내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너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내가 존재해야 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를 위한 것이야.'

'이 사람을 위해 일어서자. 내가 낙담할 게 아니라 이 고마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일어서기로 결심합니다.

정말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겁니다.

이제 마음이 급해졌어요.

우선 먼저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강점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하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 교수가 되면 손 사용하지 않고 입을 사용해서 먹고 살 수 있겠구나.'

몸은 아팠지만 그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영어 공부를 시했습니다.

근데 목표가 뚜렷하니깐요, 긴 문장도 세번만 읽으면 다 외워지는 거에요.

어 머리가 이렇게 좋아졌어요.

(관객들의 웃음)

처음에는 파편 맞아서 머리가 좋아진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야. 몰입하고 집중했던거죠.

몰입하고 집중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 평상시 나타나는 포텐셜 능력의 7배, 아니 70배까지 나타난다고 봅니다.

엄청난 장인어른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는 결혼을 강행했습니다.

결혼하고 정말 대학 졸업 전에 연년생으로 애를 2명을 낳았어요.

학생 신분으로. 자동으로 교수의 꿈은 사라졌고 가족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취직을 해야했습니다.

아내가 있기에 참 가난했지만 행복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취직이 되지 않습니다.

'어 국가유공자 우대해준다 그랬는데? 10점 가점 해준다 그랬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손 없는 국가유공자 본인은 싫다는 거죠.

여러 군데 취업에 실패하고 또 고민고민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거 굳이 묻지도 않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손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터벅터벅 걸어나올때 여러분들 몰랐잖아요.

'아 얘기하지 말자. 국가유공자 증명서 떼어 내지 말자'

그리고 애경그룹의 면접 통보가 왔을 때 그냥 갔습니다.

몰라요. (웃음)

근데 면접(볼 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으니까.

전혀 모르는데, 날카로운 면접관에 의해서 결국 오른손이 의수라는 것을 고백하고 말았어요.

면접 중단

그리고 그 즉석에서 낙방 통보를 받습니다.

살기 싫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 때 마침 인천에서 회기역까지 오는 전철이, 경희대 앞까지 오는 전철이 쫙 들어서는데

'뛰어 내릴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정말 억울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거 세상이 시키는대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이래선 안되겠다.'

다시 면접 장소로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 뛰기 시작합니다.

막 뛰어가지고 '허가를 내주세요. 잠시면 됩니다. 잠시면 됩니다.' 하고 허가를 받아서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누구나 다 두 손 있습니다. 그러나 다 한 손으로 글씨 쓰지요.

저도 얼마 전까지 두 손 있었지만 그 때도 한 손, 지금도 한 손으로 글씨 씁니다.

누가 양손으로 펜 잡고 동시에 글씨 씁니까?'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비록 저는 한 손밖에 없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책임감도 강하고요. 어차피 어영부영 손도 없는 사람이 살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지요. 저는 나쁜 짓 하다 손 다친 사람이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꺼이 내 손을 희생한 국가유공자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은 군대 안갑니까?'

쭉 저 얘기하는 거를 보던 장영신 회장님께서 용기를 가상하게 보셨던지

갑자기 '전공이 뭐에요?' 그러는 거에요.

'저 영문과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영어도 잘하시겠네요.' 그래서

'뭐 조금' 그랬더니만은

(관객들의 웃음)

'그러면 그거 영어로 다시 한 번 해보세요.'

큰일났어. 나도 무슨 얘기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이걸 영어로 하래.

그 때 망설망설망설이는데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리는 거에요.

'서환아' '예' '영어로 말해. 말해. 말해! 말해도 어차피 그 사람들 못알아듣는다.'

(관객들의 웃음)

기가 막힌 순간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에요.

그래서 영어로 막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표정들을 살펴보니까 진짜 대부분 못알아듣는 거 같더라고요.

근데 한 분, 그 분은 알아들었는지 가운데 계신 분은요. 얼굴이 어머니와 같이 환해지셨어요.

'알았어요. 나 혼자 뽑는 건 아니니까.'

그 이튿날 오후 5시 반 우체국 집배원이 전보를 갖다 주는데, '애경 입사를 축하합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관객들의 박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렇게 힘들게 애경에 입사를 했는데

내 인생은 왜 이러냐 진짜. 산 넘어 산이야.

시키는 일이 고향가서 피켓들고 있는 거였어요.

'하 팔이 빠져. 내가 영문과 이거 들고 있으려고 나왔냐.'

회사가면 번역이야. 그러다가 안 들 수도 없고 그러다가 '이거 아프긴 한데 두 팔 가진 사람은 바꾸기라도 하지 나는 한 손 밖에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떻게 하다가 피할 수는 없고 이거 즐기자, 어떻게 즐겨?

운동, 운동이라 생각했어요. 팔이 안 아픈 거에요. 운동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거 인생은 멘탈이구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 때부터 팔도 안아프고요.

그 때 외국인들이 주는 명함을 받았어요. 근데 거기에 마케팅이라고 쓰여있었어요.

1980년도 초 우리나라에는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아예 있지도 않은 시기인데,

이들은 마케팅이라고 명함에 쓰여있다 이거죠.

'이게 미래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래서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에 주경야독으로 마케팅 공부를 했습니다.

친구들은, 입사 동기들은 비아냥대죠.

'야 공부해서 뭐하려고? 교수될 것도 아닌데.'

친구들은 술 먹으러 가고 노래방 가고 했지만 저는 도서관으로 가고 밤에 학교를 가고 했죠.

참 피곤하고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No pain no gain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2년 뒤에 영국과 미국으로 두 회사가 나눠지고, 저는 마케팅으로 대형 히트 작품을 내기 시작합니다.

업계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국제적인 헤드헌터 콘펠회사가 저를 미국 다이알사 중역으로 스카웃합니다.

군대에서 못 딴 별을 만 35살에 별을 단 거에요.

마케팅 임원이 된 겁니다.

'당신의 노력은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정확히 맞았어요.

급기야 KTF의 마케팅 전략실장으로 발탁돼서 거기에서 부사장까지 올라갑니다.

최근 우리 사회 청년들은 어떻게 보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부족한 경제적인 여건, 부족한 일자리, 경쟁 과열, 결혼, 출산

근데 약점은 잊고, 강점에 집중하십시오.

우린 통상 약점에 매달립니다. 근데 살아보니깐요. 약점은 잘 극복해도 2등 갑니다.

강점은 살리면 바로 1등 간다는 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오른손이 없다는 사실에 집착했다면 아마 이 자리에 못 섰을 겁니다.

자 여러분, 10초만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약점을 떠올려보세요.

네. 다시 10초간 눈을 감고 나의 강점을 떠올려보세요.

이것이 여러분이 가야할 길이 될 것입니다.

제 얘기가 여러분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힐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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